파라오


pharaoh


('큰 집'이라는 뜻의 이집트어peraa에서 유래)

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

원래는 고대 이집트의 왕궁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신왕국시대(제18왕조부터 시작, BC 1539~1292)에 이집트 왕과 동의어로 쓰이게 되었고, 제22왕조(BC 945경~730경) 때는 이미 존경을 나타내는 형용어구로 사용되었다. 파라오가 왕의 공식 칭호로 쓰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후 이 용어는 고대 이집트의 모든 왕을 일컫는 총칭으로 바뀌었다. 공문서에 적힌 이집트 왕의 정식 칭호는 모두 5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이름 앞에는 '호루스', '두 귀부인', '황금 호루스',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의 왕이며 두 땅의 주인', '태양신 레(Re)의 아들이며 왕관의 주인'이라는 칭호 가운데 하나를 덧붙였다. 마지막 칭호는 태어날 때 받는 이름이고, 나머지 칭호들은 대관식을 거행할 때 받았다.

이집트인들은 파라오가 신이라고 믿었고, 파라오를 하늘의 신 호루스와 태양신인 레와 아몬 및 아톤과 동일시했다. 죽은 뒤에도 파라오는 여전히 신성을 유지하여 호루스의 아버지이며 죽은 자들의 신인 오시리스로 변형되었고, 그의 아들인 새로운 파라오에게 신성한 권력과 지위를 물려주었다.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신성한 지위가 그에게 마술적인 힘을 부여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파라오의 우라에우스(파라오의 왕관에 달린 코브라 모양의 표장)는 적들에게 불길을 토해냈고, 파라오는 전쟁터에서 수천 명의 적을 짓밟을 수 있었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자연과 땅의 생산력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파라오는 신성한 통치자로서 신이 주신 질서(ma'at)의 수호자였다. 또 그는 이집트 땅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그 사용법을 지시했으며, 백성의 경제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을 책임졌고, 신하들에게 정의를 보여주었다. 파라오는 최고의 권위를 지녔고, 그는 포고령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공정하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파라오도 남에게 책임을 위임해야 했다. 가장 지위가 높은 보좌관은 와지르(wazr)이었다. 와지르는 여러 가지 의무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담당하고 국고를 관리하는 우두머리로서 재정을 책임지고 모든 기록을 감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였다. 이 중앙정부 밑에서 파라오의 뜻은 노모스[州]를 통해 집행되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는 노모스라는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파라오는 신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살았고, 신하들은 그를 신성한 왕으로 높이는 의식을 따랐다. 예를 들어 파라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파라오가 죽으면 이집트식 장례를 거행했는데, 이 장례식은 그가 내세에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고 이집트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도 그들의 신성한 통치자가 높은 지위를 갖고 있긴 하지만 역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들은 파라오의 업적에 따라 그를 평가하고 비판했다. 또 파라오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고, 무능한 파라오는 왕위에서 몰아내거나 살해했다. 그러나 새로 왕위를 계승하는 파라오는 모두 그를 신성한 통치자로 인정하는 의식과 전통을 보호받으며 왕위에 올랐다.


"파라오"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http://members.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23p0496a>[2002. 11. 30자 기사]